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떨어지고 있다.
삼년은 지났을 것이다.
검은 공간을 하염없이 떨어져내릴 뿐이니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는 알 수 없다.
삼년은 지났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자고 생각해두었다.
삼십년은 지났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아득하다.
삼일 정도 지났을 거라고 생각해도 아득하다.
삼년은 지났을 것이다.
생각에 생각을 거듭한 끝에 그렇게 생각하기로 생각해두었다.
삼년째 떨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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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래희망이 무엇이냐고 묻는 사람에게 잘 죽고 싶다고 대답한 적도 있다.
장래희망이 죽는 것이냐고 되묻는 사람에게 죽고 싶은 것이 아니고 잘 죽고 싶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잘 죽으려면 잘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죽을 때만은 여한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여름엔 복숭아를 듬뿍 먹고 가을엔 사과를 양껏 먹을 수 있는 정도로 만족하며 살다가 양지바른 곳에서 죽고싶다고 생각했다.
느닷없이 불에 타거나 물에 쓸려가거나 무너지는 건축물에 깔리는 일 없이,
조금 더 바란다면 길고 고통스러운 병에 시달리지 않고 죽음을 맞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말하자 대화를 나누던 사람들 가운데 하나가 내게 요즘처럼 사람의 죽음이 험한 세상에서
평생을 좋은 일을 하고 정갈하게 살아도 찾아올까 말까 한 지복을 바라는구나 너는, 하며 웃었다.
그 정도가 지복이라면 요즘의 인생이란 서글픈 것이로구나, 지나가듯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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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고 아무의 이야기를 들을 마음도 없어서 점차로 완고해지는 얼굴,
듣는 법도 잊고 말하는 법도 잊어서 한 이야기를 똑같은 문장으로 하고 또 하고 또 하는 아주머니.
그건 나였을지도 모르겠다.
다름아닌 나였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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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봐요 이봐요 나는 여기서 떨어지고 있어요
거기는 괜찮은가요 괜찮게 떨어지고 있나요
  외롭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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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씨의 입문을 읽고 있으면 쓸쓸함과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우울이 느껴진다.
책의 이야기들이 구체적이지 않고 상당히 모호해서 독자의 시선으로 대부분을 이해해야 한다.
내가 이 책을 읽고 있으면 어찌할 수 없을 정도로 사무치는 '우울'이 느껴지니 지금 내 상태는 우울 그 자체일지도 모르겠다.
 3번째 챕터 '낙하하다'에서 어딘가로 낙하하는지 역시 책에서는 등장하지 않아 그저 나의 생각만으로 상상해야 한다.
그 끝이 어디인지, 얼마나 떨어진건지, 사실은 낙하하는 것이 아닌 상승일지도 모른다는 이 막연한 이야기들은 나에게
우울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였다. 그저 우울 그 자체였다.
어디서 파생했는지 마지막은 어디인지 모르겠으나 나의 영혼을 갉아먹는 비이상적인 존재.
떨쳐내고 싶지만 떨쳐낼 수 없어 어쩌면 내가 초연해지는 것만이 답일지도 모르는 존재.
하지만 어딘가에는 부딪혀 나의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알아달라고 외치고만 싶은 모호 그 자체.
 사실 어떤 단어로 정의되는 감정들은 모순되며 모호한 입장을 가지고 있다.
누군가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은 치부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너무도 처절하게 알아주었으면 하는 것이기도 하다.
살아가다보면 책에서의 떨어지는 것과 상승하는 것 중에서 무엇이 사실인지를 깨닫지 못하는 것처럼 무언가를 깨닫지 못할 때가 있다.
내가 느끼는 감정들 중에서도 사실은 어떤것이 나의 진실 된 감정인지 저렇게 깨닫지 못할 때가 많으니 말이다.
1분 1초, 시시때때로 변하는 내 자신 중에서도 무엇이 진실 된 나인지 전혀 모르겠다.
 우리들은 사실 우리 나름대로 어딘가로 무한한 시간대를 그리며 낙하하고 있는지 모른다.
누군가에게는 인간관계일테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궁핍한 가난이며 또 다른이에게는 말과 글로조차도 명명할 수 없는 것일 것이다.
각자에게 정해진 시간을 살아내는 우리들이지만 고통의 파장은 무한대를 그려 우리의 유한을 갉아낸다.
자의인지 타의인지 모를 정도로 우리들은 조용히 추락해 어둠의 굴레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한 번 빨려 들어간 공간은 경계가 없으며 모든것이 불분명하다.
그런 공간속에서 우리는 점같은 존재이다.
선을 이루고 면을 이룰 수 있을 정도로 자라나 하루 빨리 벗어나고 싶지만 벗어날 수 없는
그저 한낱 점같은 존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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