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이토록 슬픈데 주여, 바다가 너무도 푸르릅니다. -엔도 슈사쿠
그날 눈사람은 텅 빈 욕조에 누워 있었다. 뜨거운 물을 틀기 전에 그는 더 살아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더 살아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 자살의 이유는 될 수는 없었으며 죽어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 사는 이유 또한 될 수 없었다. 죽어야 할 이유도 없었고, 더 살아야 할 이유도 없었다. 아무런 이유 없이 텅 빈 욕조에 혼자 누워 있을 때 뜨거운 물과 찬물 중에서 어떤 물을 틀어야 하는 것일까. 눈 사람은 그 결과는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뜨거운 물에는 빨리 녹고, 찬물에는 좀 천천히 녹겠지만, 녹아 사라진다는 점에서는 다를 게 없었다. 나는 따뜻한 물에 녹고 싶다. 오랫동안 너무 춥게만 살지 않았는가. 눈사람은 온수를 틀고 자신의 몸이 점점 녹아 물이 되는 것을 지켜보다 잠이 ..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신호소에 기차가 멈춰 섰다. 설국, 가와바타 야스나리
내가 죽으려고 결심했던 건 괭이갈매기가 부두에서 울고 있었기 때문이야제멋대로 떠올랐다 사라지는 파도처럼 과거도 쪼아 먹고 날아가거라내가 죽으려고 결심했던 건 생일날에 살구꽃이 피었기 때문이야그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빛 아래서 잠들면 벌레의 사체와 함께 흙이 될 수 있을까박하사탕, 항구의 등대, 녹슨 아치교, 버려진 자전거나무로 지어진 역의 난로 앞에서 어디에도 여행을 떠날 수 없는 마음오늘은 마치 어제와 같아 내일을 바꾸려면 오늘을 바꿔야만 해알고 있어 알고 있어 하지만내가 죽으려고 결심했던 건 마음이 텅 비어버렸기 때문이야채워지지 않는다고 울고 있는 건 분명 채워지고 싶다고 바라기 때문이야내가 죽으려고 결심했던 건 신발 끈이 풀렸기 때문이야다시 묶는 건 서투르단 말이야 사람들과의 관계 또한 마찬가지내..